자신을 속이는 사람들…
- 수영 유

- 2020년 9월 29일
- 2분 분량
자신을 속여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어”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는 잘 할 수 있을꺼야." 는 경우부터 시작해서, 고해성사를 보면서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는 경우까지, 나 자신에게, 하느님께 허언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그러합니다.
“진짜” 자신보다 “더 좋은” 자신이 되기를 상상하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바램"때문이었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하느님께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거짓말은 진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으면서 허구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고, 대게는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시작해서 “자신을 속이는” 원치 않은? 거짓말은 자신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한 그러한 “자신을 속이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워지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병적인 거짓말”도 있습니다.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을 때, 가족들에게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반복되는” 거짓말이 바로 그러합니다.
도박을 비롯한 어떤 병적인 중독과 관련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어쩜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자기애적 방어기제의 하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하는 자기 방어와 자기 위안, (가끔 자기 합리화)는 하느님 마저도 속이는, 건강하지 못한 신앙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 뒤에 따라 오는 "자괴감"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늘 복음,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아들”은 “두 부류의 죄인”이고,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회개” 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싫다고 대답을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서 일하러 간 아들은 죄인이었지만, 회개한 사람이고, 일하러 가겠다고 했지만, 가지 않은 아들은 회개하겠다고 말만 하고 실제로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세리와 창녀들은 비교하신 것과 같은 비교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말로’, ‘겉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종종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확신?에 자신들을 속이고, 자신들이 위선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결심과 다짐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도움이 없으시면, 나의 힘 만으로는 변화되기는 어렵고, 회복도 힘들 것입니다.
“죄의 무기력함”을 인정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는 결심 뒤에,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닭이 세 번 울기 전,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는 예수님의 이야기에 “저는 아니겠지요” 는 답을 했던 베드로 처럼, 자기 확신?에 가득찬 분들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인간의 나약함을 인식하는 것도 쉽지 않고, 인식되어진다 하더라도 인정하는 것들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뒤 느꼈을 "자괴감 같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솔직해지는 것” 입니다.
하느님께 앞에서 모든 것에서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을까요?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속이고 있다면, 할 수 없는데, 할 수 있다고 속이고 있다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 보도록 합시다.
정말 괜찮을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거짓말을 사실처럼 말하는 자기 기만의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부터 회복과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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