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S HEALING CENTER
삶의 회복 여정

삶의 치유와 회복 여정 영적 일기
삶의 회복 여정 일기 안내

희망
어떤 이들은 전문 심리 상담가의 도움이나, 정신과 치료를 위한 약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인적인 시각 (마음의 문제 - 영적인 문제 )를 고려한다면, 그것은 불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의학 전문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접근은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상처와 상실의 아픔 속에서 평화를 찾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삶의 치유와 회복 여정"은 한번 시작해서 끝내는 여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신뢰와 나눔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는, 변화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상처, 감정, 생각을 드러내고 나누지 않으면 치유도 없고 삶의 변화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보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다가올 때 우리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 영적 일기는 그러한 면에서 중요한 활동입니다.
이는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리고,우리의 상처가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억과 감정의 상처와 아픔을 떠나 보낼 수 있게 (LET IT GO) 될 것입니다.
라이프 힐링 센터 유수영 아브라함 신부
영적일기- 의자기도

일기에 신부님이 “내가 아닌 나를 기도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라고 쓰신 것을 읽고 고민에 빠졌다.
의자에 앉혀 놓을 상대가 생각이 안 나서 멍하니 빈의자만 쳐다보다가 기도를 그만두게 된 경우가 많았다.
‘분명히 의자 기도할 사람도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마음에 남아 있던 이미지는 옛날에 내 꿈에 나왔던 무적의 힘을 가진 아이였다.
이 아이가 기도에서 다시 떠올려졌을 때는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상처받았던 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아이의 얼굴이 떠올려질 때마다 좀 찜찜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걸렸다.
내 인생에서도 계속 나를 붙잡고 있는 찜찜함이 있는데 이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빈의자를 떠올렸을 어느 덧 그 무적의 힘을 가진 아이가 앉아 있었다. 보자 마자 왠지 화가 났다.
그 아이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너는 왜 바보 같이 말을 못해!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 많으면서
왜 한마디도 못하는데! 아프다고 해! 도와 달라고 해!
왜 너는 생각으로, 속으로만 그렇게 떠들어!” 하고 화를 냈다.
그 아이는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를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는데 내 안에서 갑자기 생각도 못한 말이 훅 나왔다.
“너 재밌지! 너는 그렇게 속으로 떠드는게 재밌지!”
이 말이 나오자마자 그 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어, 재미있어! 나는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낄낄 웃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아이처럼 보였던 아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고
기괴하고 더러운 옷을 입은 징그러운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것 한테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너는 속으로 그 모든 말들, 생각들만 갖고 놀아.
너가 그렇게 좋아하는 상상, 망상, 공상. 그게 그렇게 재밌지!” 하는데 그것이 더 웃고 나에게 또 대답했다.
“나는 그거 다 품고 죽을꺼야! 그거 다 껴안고 같이 죽을꺼야!” 하면서 더 낄낄거렸다.
이 대답에 예전에 했던 카인과 아벨 묵상이 떠올랐다.
나는 카인의 시선이었는데 내가 아벨을 죽이려고 아벨을 불렀을 때
그 아이가 너무 순진하게 아무 의심없이 카인을 따라와서 묵상 중에 놀랐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아벨의 시선이 되었다.
카인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아벨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죽을 결심을 한 것이었다.
나는 내 억울함으로 카인을 살인자로 만들고 카인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게 하려고
내 발로 카인 손에 죽으려고 갔다.
카인이 나를 죽이는데도 아무런 고통도 안 느껴졌다. 평생 카인이 고통받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신나 죽겠다.
이 묵상이 다시 보이고 낄낄 거리는 그 놈을 보면서 나는 이 놈의 이름을 “한을 품은 귀신”이라고 붙였다.
이 놈의 모습이 너무나 끔찍하고 놀라웠지만 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내가 이런 마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무기력한 나, 상상, 망상, 공상으로 관계가 힘들었던
나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끔찍했지만, 동시에 달콤했던 순간들도 기억났다.
혼자 상상 속에서 여주인공이 되어 있는 나, 자극적인 게임, 만화를 즐겨 보았던 나,
보잘 것 없지만 재미 있었던 것들.
이 쾌락을 더 즐기고 싶은 나와 거기서 해방되고 싶은 나, 둘 다를 동시에 느꼈다.
이 놈을 본 후 더 이상 내 자신을 숨기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못 자국 상처를 지니신 예수님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다.
이 장면을 묵 상할 때마다 예수님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았지만 왠지 듣기가 두려워서 피했었다.
이번에는 예수님 표정을 힐끗 보았다.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밝은 표정이셨다.
그러곤 “잘했다.” 한마디만 하셨다. 내 마음 속에 있던 무거움이 한순간에 풀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손을 내밀어 못자국 상처를 만지고 싶냐고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만지고 싶다고, 이제서야 내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손가락으로 예수님 상처를 만지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과 느낌이 마음 속에 흐르는 샘처럼 차올랐다.
알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상처는 우리들의 상처들을 흘러 보내는 통로였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상처와 죄를 다 받아들이고 우리만을 간절히 기다리셨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게 예수님 몸에 남겨두신 증거가 그 상처들이었다.
나의 상처를 통해 나와 내 삶에 영향을 미쳐 악이 저질러 놓은 일을
얼마나 섬세하게 다루어 주셨는지가 느껴졌다.
마치 손가락 하나 하나에 힘을 슬슬 빠지게 하면서 어느 덧 마른 낙엽처럼 힘없이 떨어져 나가게 하셨다.
내가 다치지 않게. 내 영혼이 놀라지 않게. 요즘은 진짜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졌다.
평생 숙제 같았던 관계의 문제가 많이 풀린게 느껴진다.
누구랑 있어도 어색함이 많이 없어졌고,
무슨 말을 할까? 하며 대화를 피하거나 버거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이 술술 나온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캘리포니아 OOO 아나스타시아
선교지에서 온 편지

56년의 삶, 그리고 23년의 이민 생활...
주어져 있는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하였습니다.
가끔 주일 미사만 드리던 저를 유수영 아브라함 신부님께서는 봉사를 권유하며,
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메마른 땅처럼 황폐해져 가고,
입으로만 하느님을 부르던 저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이나
다가올 고난과 역경을 변화 시켜 주시지는 않았지만,
구원해 주심을 진실로 믿을 때
어려운 상황을 잘 대처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힘! 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성당에 머물러 있었던 많은 시간과
신부님과의 면담을 통해서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던 나약한 마음을
주님의 자비하심에 봉헌하고 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어리석어서
같은 죄를 짓고 있는 무기력한 저 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나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신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2017년 12월 미국에서 000 마리아
(예수성심전교수도회 회보 기제)
어린시절의 상처 치유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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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민과 함께 제가 원하는 삶이 이루어졌을 때
저는 감사의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제가 원하는 삶이 이루어진다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약속 했던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졌던 풍족한 삶은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둡고 깜깜한 구덩이에 빠졌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모든 것을 불신하고 구덩이에서 나오려고 아우성 치고 있는
저는 마치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같았습니다.
지붕 위가 너무 뜨거워 그대로 있을 수도 뛰어내릴 수도 없었을 때,
하느님은 유 신부님을 통해 그 사랑의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그 손은 사랑의 채찍과 함께 였습니다.
지난 50년의 세월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 했던 마음까지도
하느님 앞에서는 교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상처를 들어다 보고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무척 이나 힘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부심과 자존심을 놓기까지 하느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셨습니다.
지난 삼 년간 유 신부님과 함께 했던 영적 훈련 시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 된 저를 찾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더 많은 것들을 인식 해야 하고 꺠져야 하지만
지난 시간의 고통은 이제 제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리석었던 시절에는 하느님을 저의 자아를 굳히는 방패로 삼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분의 뒤를 따르는 그분의 자녀로 살 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미국에서 000 미카엘라 .
치유와 회복 :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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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오늘 아침 기도하면서 "슬픔"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는 미국으로 온 것이 슬픔이었고, 그게 슬퍼서 울고 싶어졌습니다.
미국 생활이 저에게 하느님께 가까이 와 있게 하고,
기도하며 살 수 있는 길로 이끌어 주셨는데,
아직도 그게 슬픔으로 온다는 것은
인간적인, 세상적인 풍족함과 좋은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것에
아직 미련이 남아 있어서 일까요?
한국의 생활과 미국의 생활이 저에겐 세상과
하느님의 길로 확연히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국은 풍족하고, 즐겁고, 뭐하나 고통스러운 것이 없었고,
미국은 우선 사람들이 힘들었고, 재산도 다 없어지고,
그럼에도 주님과 가까워지고 기도하며 기도하며
감사하게 살았는데로 왜 슬퍼질까요?
신부님 매주 하시는 영적 여정을 더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신부님이 계신게 저는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년 미국에서 000
악마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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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방식이 하느님이 원하신 것이라고,
하느님 뜻을 향해 누구보다 열심히 희생하며 살고 있으니
누구든 내 뜻을 꺾고 나를 아프게 하면 모든 잘못은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내 상처의 힘으로 나의 노력에 다른 사람이 감사해 하지 않으면
난 억울하고 짜증을 느꼈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고, 저주했다.
내 뜻은 그 어떤 하나도 놓지 못하고 나를 더 깊은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지만
여전히 그것들이 하느님의 뜻인 척, 더 집착과 애착을 키우며, 나를 피해자로 거짓 포장 했다.
내 안에 제대로 된 사랑, 보호, 보살핌 받지 못한 상처로부터 온 내 안에 악마적 시선은
내 아이를 최고로 사랑하고 보호하고 지키는 훌륭한 엄마라고 한다.
내 아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나 스스로를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고,
나를 아프게 하고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은
모두 내 아이들에게 해악이 되는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고,
내가 받은 상처와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같게 묶었다.
내 아이들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 계속 몰려 왔고 난 지속적으로 그 악마적 시선을 더욱더
강화시키고 정당화 시켰다.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고 지키고 보호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처럼 만들어
아이들이 죄책감 느끼고 무기력하게 한다..
아이들은 점점 하느님을 찾기보다 엄마가 없을 까봐 불안해 한다.
나는 이제 영적으로 나를 끌고 가는
내 안에 악의 힘은 하느님을 향한 방향이 아닌 내
상처의 힘이고, 그것이 이끄는 방향으로 내가 나아갈 때 그것을 영적으로 인식하고자 한다.
하느님을 향한 진실함을 가지고 민감 해지려고 한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분명히 알고 자비의 하느님은 상처로부터 허덕이는
죄악의 굴레로부터 저를 끌어올려 주심을 믿는다.
2022년 미국 ooo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