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받지 못한 마음”- 분노?
- 수영 유

- 2020년 10월 2일
- 2분 분량
“만일 함께 하고 있고, 또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으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봉창 두들기는 소리’만 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

예전에, 어떤 자매가 친정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급기야는 험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연이 분명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누구보다 어머니 말씀을 잘 듣던 '착한 아이'였고, 어머니는 “너가 착하니까…라는 말로 굳은 일은, 어려운 일은 모두 이 자매에게 평생을 시켰기 때문” 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착한 아이’이고자 했던 그 자매님을 주변 사람, 남편도, 시댁도, 아이들도 모두 ‘이용’? 하기 도 했을 것입니다. 그 ‘분노’의 정체는 상실감, 억울함, 회한… 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 이 자매님은 누군가에 의해 행해졌던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지금은 이 자매님이 “가해자”가 되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 자매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비전이나, 이상, 기대, 희망을 누구와도 공유하고 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강요하는 모습이 나타났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폭력” 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먹이나 힘이 동원 되어야만 폭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폭력의 한 단면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안에서도 꽤 많은 가정이 그러할 것입니다. 설마 저 사람이 설마 저 가정이.. 라고 할 정도로..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러한 폭력에 대한 것들은 일명 “대물림” 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대물림 된다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상황, 이해 받지 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상처들 속에서는 기본적으로 왜곡된 인간관계를 보고 배웠기 때문에, 분노와 적개심이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늘 자리 잡고 있는 것인가 봅니다. 이해 받지 못한 마음들 때문에, 슬픔과 적개심이 생기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성향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등한 관계, 서로 이해하고, 이해 받는 관계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요? “칼을 칼 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칼과 몽둥이로 당신을 잡으러 온 이들을 향해 칼을 빼 들었던 베드로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전을 공유하지 못해 산란해진 – trouble 일 걸린 – 베드로에게 지금 어떻게 그것을 함께 하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는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가정과 공동체에 ‘열정’과 ‘의욕’을 일으켜 주는 비젼 공유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고, 서로가 기다려주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끊임없이 다듬어 갈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입니다. 그동안 이해받지 못했고, 이해해 주지 못했던 마음들이 있다면 나누어 보면 더 좋겠습니다. 노력해도 안 되면? 그 마음은 예수님께 들고 가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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