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두려움의 치유와 회복
- 수영 유

- 2020년 9월 29일
- 2분 분량
우리는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 한 자매님께서 요즘 술을 자주 마시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 알코올 중독이 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하시면서... 술을 마시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라 하셨습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어쩜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불안함과 두려움을 종종 느낍니다. 그러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늙고 병들었을 때 불안하고 두렵기도 할 것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가늠할 수 없을 때 불안해지고, 두려워질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생겼을 때, 가슴에, 머리에 쌓아 두지 않고 묵상 노트에 불안함과 두려움에 대해 펼쳐 두기도 하고, 하느님 앞에 펼쳐 두기도 했습니다. 대처를 할 수 있는 것은 대처를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간 저만 더 힘들어 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불안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연결되었던 것은 ‘숨기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때’ 였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은 무엇인가 잘못을 해서, 야단을 맞고, 그로 인해서 ‘존재 자체가 밀쳐질까봐? 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었는지, 모든 것을 꼼꼼하게 정검하고, 준비하는 습관이 저에게는 만들어 졌습니다. “어떤 상황을 통제하게 되면, 준비하게 되면, 덜 불안하고 두려워 질까봐? “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어떤 “이끌림”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저의 모습은 “꼼꼼하다” 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부정적으로는 “깐깐하다” 로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분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깐깐하게” 느껴졌고, 더 나아가서는 “경직되어 있는” 모습으로도, 때론 그러한 그 분이 “외롭고””힘들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저 역시, 그렇게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에서 그 정도가 심하게 될 경우, 우리는 “편집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그 편집성의 본질을 “불신”에 있다고 설명을 하곤 했습니다. 편집성이 강한 사람들은 작은 농담에도 분개하며, 사람들을 강하게 통제하려고도 한다. 그들은 유머 코드가 없다... 그렇게 심리학자들은 설명을 했습니다. 저에게도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성경에서 ‘두려움’이라는 표현이 처음 사용된 것은 창세기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그들을 찾으시는 하느님께 이야기합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창세기 2,10) 그들의 두려움은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었을까요? 아마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라기 보다는 ‘하느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될까봐? 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 영성심리학자들은 우리의 두려움의 이유를 “혼자라고 느끼는 것” 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불안한 요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무엇 하나 예상될 수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치유해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까락까지 다 세워 두셨다. 하느님 앞에 가게 될 날이 올 때에도 내가 너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우리가 아마 처음 느꼈던 불안함, 두려움의 감정은 태어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상처 입은 기억 속에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는 것은 “너는 혼자가 아니다. 언제나 나는 너와 함께 하고 있었고, 함께 할 것이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어둔 밤, 혼자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한다 생각하며 불안하고 두렵고, 때문에 주저 앉아 버리고 싶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에 든든한 동반자가 있다면, 그렇게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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