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라자로(루카16,19)
- 수영 유

- 2022년 9월 25일
- 2분 분량
미국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문화 중 하나는 ‘문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이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먼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한 신부님의 표현으로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 합니다. 미국의 또 다른 문화? 중 하나는 분쟁이 생기면 법정에 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게 여기지는 것이 미국의 문화이고, 이러한 시각에서 만들어진 문화, 매너라는 설명이 바로 그 신부님의 이야기였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내면의 모습은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함, 법정으로까지 가지 않기 위한 방어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방어적인 모습은 마음 안에, 문화 안에 숨겨진 잘못된 신념, 때로는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자기애적인 성향의 이기심, 나와 뜻이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색한 마음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인색한 사람을 성숙하지 못한 사람, 변비형 성격, in put 은 있지만, out put 이 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설명합니다. 이는 성장 과정 중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그 원인으로 보며, 그의 특이한 발상은 money= dung 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인색할 뿐만이 아니라 융통성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적대적이며, 지속적인 불안과 의심을 지니게 됩니다. 인색한 이유, 보유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삶의 과정 중 만들어진 이러한 상처의 결과가 아닐까요? 마치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가 ‘이 과자는 내꺼야!’ 라고 움켜쥐고 있는 이미지이며, 그 마음은 바로 인색한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부자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지만, 왜? 부자가 저승으로 갔을까요? 부자가 특별한 잘못,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라는 합리적인? 생각도 해 봅니다. 가난한 이를,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내 집 대문 앞에 누워있는 라자로를, 집으로 받아들여 먹이고 씻기고 그 몸의 상처를 치료해 주면 좋았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달갑지 않은 상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때로는 그 사람을 집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던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내 가족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면, 나를 방어하고자 뒷사람이 들어올 때 문을 잡아주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저승에서 고통받아야 할 이유라 설명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이러한 마음들이 결국은 부자가 저승에 가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 생각들의 이면에는 속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속임수는 분명 악마의 속임수입니다. 구체적으로 악마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끌어가는 분명한 방법 중 하나는 우리 내면의 상처를 이용해서, 그 상처를 통해 우리를 기만해서 잘못된 신념을 지니게 하고, 자기애적인 성향의 이기심을 지니게 하고, 나와 뜻이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심지어 자기 방어적인 모습의 인색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말씀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입니다. 신뢰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의 인색함은 많은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돈에만 인색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받아들이는 것에도 인색한 분들이 있습니다. 내 뜻, 내 방식만을 고집하고, 때로는 합리적인 생각들 속에서 give and take의 사고로 적당한 선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때로는 잘하려고 마음으로, 내 가족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분들도 계십니다. 이러한 분들이 죄, 잘못을 행하는 것이라기 보다, 그러한 마음들이 만들어진 상처가 치유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상처들이 치유되지 못할 때, 합리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있지만, 그 상처로 인해 부자가 지옥에 가게 된 것과 같은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스쿠르지처럼 나의 마음의 인색함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깨닫고, 닫힌 마음의 문을 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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