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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5일 사순 2주일 영적 위로와 위안 VS 인간적인 위로와 위안

최종 수정일: 2024년 1월 5일


한 자매님이 “나에게도 돌아온 탕자처럼 남겨진 유산이 있을까요?”라는 나눔을 해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받아들여진 경험의 결핍으로 인해,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으로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십니다. 단지 생각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말과 행동 안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방어적인 모습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받아들여지기 위한 몸부림으로서 착한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누군가를 신뢰하는 능력도 부족했습니다. “당연히” 라는 것은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은 하나의 능력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랑 받은 경험, 받아 들여진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능력과 같은 맥락입니다. 발달 심리에서는 신뢰 형성 과정에 대해 유아기 시절 부모님과 관계 형성을 통해 그 능력(용량)이 만들어진다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분의 잘못도, 그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그 부모님들 역시 그 역량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의 문제뿐만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의 능력(자기 확신)도 부족했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느님을 믿는다 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신앙 생활을 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도움은 상처의 깊이 따라 다르겠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분을 찾는 듯했습니다. 그 분의 말 그대로를 보면 위로와 위안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신뢰하지 못하는 상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처, 부정적인 감정들을 흘러 보내고 떠나 보내는 작업과 함께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경우들도 있지만, 이 위로와 위안이 주는 달콤함이 주는 안주하고자 하는 유혹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인간적인 위로와 위안, 영적인 위로와 위안이 무엇인지 분명히 우리들에게 일러줍니다. 먼저, 인간적인 위로와 위안은 그 위로와 위안의 방향성이 자신들을 향해 있게 만듭니다. 자기 만족을 추구하게 만들고 욕구와 욕망을 충족하려 하며, 안주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앞에서 베드로의 이야기,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오 17,4)가 바로 그러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 말하며 마치 자신이 아닌 그 분들을 향한 경외심으로 포장을 하기는 하지만, 사실 베드로의 시선은 자기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냐시오 성인은 선한 천사, 악한 천사 모두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다고 (이냐시오 영신 수련 331) 분명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의 순간에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를 재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위로와 위안도 필요합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없는 분들, 주저 앉아서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분들에게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 위로와 위안, 도움이 하느님이 주시는 것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와 위안은 예수님의 수난 이후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고, 절망 속에 희망, 그들의 변화와 성장을 가능하게 한 위로와 위안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위로와 위안은 더 큰 선을 지향하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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