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3일 연중 33주일 - 루카 21,5-19 속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 수영 유

- 2022년 11월 13일
- 2분 분량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분을 보신 적이 계십니까?
심지어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어떤 주장들에 대해서 변명이라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마치 영화 속의 어떤 인물처럼, 어떤 미지의 세계 속에 살고 계신 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못한다고 어떤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어떤 이들은 피노키오 증후군이라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일종의 자기 기만, 강박적 중독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분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되고, 못했던 것은 벌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미지의 세계관은 어린시절 상처로 점철되는, 그 영향이었습니다. 늘 거짓말을 했던 아버지,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했던 어머니, 그 원가족의 상처였습니다.
아버지의 거짓말은 외도 때문이었고, 결국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억울함을 그런 아버지를 비난하면서 거짓말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일종의 저주를 자녀들 앞에서 남편을 향해 퍼부었지만, 그 저주는 자녀들에게 향해 "거짓말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어떤 강박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단순한 어머니의 그러한 저주의 말들 때문에 강박적 모습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분의 첫 번째 상처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상처이지만, 아버지처럼 거짓말을 하게 될 때 언제라도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도 하지 못하는 어떤 강박적인 모습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여기 저기 맡겨진 이분에게, 버려진다는 것은 일종의 죽음과 같은 것, 두려움을 넘어 공포였기에 강박적인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기만이라 표현한 것은, 대부분의 자기 기만의 형태는 누군가를 속이는 사람, 그 사람이 속이기 위해서 자기를 기만하는 형태로 표현을 하지만, 이 분의 경우는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어떤 긍정적인 생각들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 등)로 회피하고, 불안과 두려움을 덮어 버린 일종의 자 기기만 이라 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루카 21.5-19)하십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악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말씀하신 것처럼, 악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속이는 자의 정체는 바로 악이기 때문입니다. 이 악을 이냐시오 성인의 말을 빌려 연애 사기꾼에 종종 비유합니다. 속이는 것은, 바람직한 것 처럼 만들어 그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말합니다. 잘 살펴보면, 많은 일들 안에 이러한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좋은 가치인 양 드러내지만, 실제로는 그릇된 일로 드러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앞에서 나누었던 이 분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하셨고, 신앙적 가치관에서도 맞는 것이지만, 그 자녀에게 거짓말을 하면 천벌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이러한 형식의 양육은 두려움과 공포로 조종하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고, 학대입니다.) 두려움을 자녀에게 심어 줌으로, 하느님을 벌하시는 하느님으로 만듦으로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못했기에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 다른 사람의 변명, 핑계에 대해 너그럽지도 못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 자녀들이 숙제를 하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떤 사정을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받아주지 못했고, 심지어 그러한 자녀 존재 자체를 거부했고 자신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을 자신 존재 자체가 거부당함을 느끼게 만든 것입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한 행위와 그 사람을 동일시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내 뜻이 지향하는 의로움에 속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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